버킷 리스트( Bucket list ) · 2020. 8. 4. · 을 되씹으며 bucket list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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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8, No. 4, 2020 427 버킷 리스트( Bucket list ) 오 장 수 [email protected] 버킷(bucket)이 ‘빠게츠’(어릴때 쓰던 사투리입니 다. 죄송합니다.)인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역시 촌놈은 어쩔수 없나 봅니다. 한 때 빠게츠로 물을 뒤집어 쓰는 이상한 해프닝 이 연쇄적으로 신문에 대서특필되던 해가 있었습니 다. 제정신들인가 했는데, 저의 친한 친구도 했다고 자랑을 하길래 이놈이 제 정신인가? 한참 쳐다 본 적이 있었습니다. 빠게츠 하면 천박해보이는데 버킷하면 있어 보이 네요? 이 말을 처음 접한 곳은 MBA class 였습니다. Bucket list? 거의 비슷한 시기에 Bullet point라는 어려운 말도 알 았습니다. 서양 코 큰 놈들이 빠게츠에 뭐 중요한 것을 담는 모양인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뭘까? 생각했습니다. 죽기전에 꼭 해야할 일들? 아마도 ‘마켓팅’ 처럼 적절한 번역말이 없어서 누가 해석을 한 말일 것입니다. 저도 죽기전에 뭘 꼭 해야되나?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라고 마음을 비운 적이 있었습니다. 2018년 12월말 프랑스 샤모니(Charmonix) 스키장 에서 스키후 점심을 먹으면서 류사부가 얘기했습 니다. “버킷 리스트에서 하나를 지웠습니다. 세계 3대 스키장에서 사장님 덕택에 멋진 스키를 즐겼습니 다.” 참고로 세계 3대 스키장은 카나다 휘슬러 (Whistler), 프랑스 샤모니, 미국 콜로라도의 에스펀 (Aspen, 흔히 아스펜으로 부르고 알려져있슴)입니 다. 에스펀은 아직 못 가봤습니다. 두어번 추진했으 나 멤버들이 비행기 직항이 없다는 핑계로 지원자 가 없었습니다. 류사부의 이 말을 듣고 또 저의 버킷 리스트를 생 각했습니다. 한국에서 했던 맹세가 유럽행 비행기 를 못 탔던 것같았습니다. 비운 마음을 망각하고 또 저의 약한 의지는 몽블랑산의 눈과 낭만을 핑계로 버킷 리스트로 갔습니다. ‘나는 더 이상 가지고 싶은것이 없는데 딱 2가지만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말 못하고 하나는 아들이 결혼하는 것(며느리와 손자, 손녀)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 말을 그때 점심 먹으면서 했는 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2019년 어느날 어리석은 제 자신을 또 발견했습 니다. 아들 결혼은 제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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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8, No. 4, 2020 … 427

    버킷 리스트( Bucket list )

    오 장 수

    [email protected]

    버킷(bucket)이 ‘빠게츠’(어릴때 쓰던 사투리입니

    다. 죄송합니다.)인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역시

    촌놈은 어쩔수 없나 봅니다.

    한 때 빠게츠로 물을 뒤집어 쓰는 이상한 해프닝

    이 연쇄적으로 신문에 대서특필되던 해가 있었습니

    다. 제정신들인가 했는데, 저의 친한 친구도 했다고

    자랑을 하길래 이놈이 제 정신인가? 한참 쳐다 본

    적이 있었습니다.

    빠게츠 하면 천박해보이는데 버킷하면 있어 보이

    네요?

    이 말을 처음 접한 곳은 MBA class 였습니다.

    Bucket list?

    거의 비슷한 시기에 Bullet point라는 어려운 말도 알

    았습니다.

    서양 코 큰 놈들이 빠게츠에 뭐 중요한 것을 담는

    모양인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뭘까? 생각했습니다.

    죽기전에 꼭 해야할 일들?

    아마도 ‘마켓팅’ 처럼 적절한 번역말이 없어서 누가

    해석을 한 말일 것입니다.

    저도 죽기전에 뭘 꼭 해야되나?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라고 마음을

    비운 적이 있었습니다.

    2018년 12월말 프랑스 샤모니(Charmonix) 스키장

    에서 스키후 점심을 먹으면서 류사부가 얘기했습

    니다.

    “버킷 리스트에서 하나를 지웠습니다. 세계 3대

    스키장에서 사장님 덕택에 멋진 스키를 즐겼습니

    다.”

    참고로 세계 3대 스키장은 카나다 휘슬러

    (Whistler), 프랑스 샤모니, 미국 콜로라도의 에스펀

    (Aspen, 흔히 아스펜으로 부르고 알려져있슴)입니

    다. 에스펀은 아직 못 가봤습니다. 두어번 추진했으

    나 멤버들이 비행기 직항이 없다는 핑계로 지원자

    가 없었습니다.

    류사부의 이 말을 듣고 또 저의 버킷 리스트를 생

    각했습니다. 한국에서 했던 맹세가 유럽행 비행기

    를 못 탔던 것같았습니다. 비운 마음을 망각하고 또

    저의 약한 의지는 몽블랑산의 눈과 낭만을 핑계로

    버킷 리스트로 갔습니다.

    ‘나는 더 이상 가지고 싶은것이 없는데 딱 2가지만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말 못하고 하나는 아들이

    결혼하는 것(며느리와 손자, 손녀)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 말을 그때 점심 먹으면서 했는

    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2019년 어느날 어리석은 제 자신을 또 발견했습

    니다. 아들 결혼은 제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 특별기고

    428 … NICE, 제38권 제4호, 2020

    허망한 버킷 리스트를 또 들먹거렸던 것이었습니

    다. 버킷 리스트를 다 달성하고 죽으나 못하고 죽으

    나 죽기전에 무슨 차이가 있으며, 과연 우리는 죽기

    직전에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하니 저의 어리석음

    이 좀더 분명히 보였습니다.

    두번째로 버킷 리스트에 대한 부질없는 생각을 없

    앴습니다.

    화우회 차기 회장으로 내정받고 취임사를 준비하

    다가 다음 얘기를 삽입했습니다.

    ‘우리가 살아 오면서 정말로 성취하기 어려운 3가지

    가 있습니다. 자식들 명문대학 보내기, 대기업 임원

    되기, 마지막으로 마누라로부터 존경과 신뢰받기.

    여기 계시는 화우회 회원님들중에 사모님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고 계시는 분 손 들어 보십시오.’

    이래놓고 우리는 모두 LG의 그 되기 어려운 임원 출

    신이니 어쩌고 저쩌고 말씀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존경과 신뢰! 여기에 충성심! 이 최고의 가치들은

    쉽게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절대로 강

    요로 생길수가 없습니다.

    어느날 집사람이, 저를 존경은 커녕, 하나도 털끝만

    큼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허망

    하기 짝이 없고 평생 열심히 죽도록 살아온 날들이

    처참하게 다가왔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나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말씀드린대로 강

    요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오랜 숙고 끝

    에 나름의 방안을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해서 죽기전에 반드시 신뢰를

    확보하자.

    이것이 나의 마지막 bucket list이다.

    그리고는 진심을 다해 더욱 노력을 했습니다. 노력

    한다고 되겠습니까마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먼저 저의 얼마남지않은 자존심마저 철저히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나를,

    자아를 다 버리고, 가족과 집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살자’

    어느 글에서 ‘Kenosis’라는 말을 알았습니다. 이 말

    을 되씹으며 bucket list를 또 버렸습니다. 이로써 3

    번 버킷 리스트를 버렸습니다.

    삶에서 소중한 것들, 살아가는 의미인 것들, 목숨

    만큼 귀한 것들마저 버려야한다고 했습니다. 그저

    물 흐르듯이 다 버리고 살다보면 신뢰가 생기면 좋

    고, 안생겨도 그만인 것을!

    무소유에 대한 법정 스님의 집착마저도 버리지

    못한 소유욕이라고 감히 논평을 하던 저였습니다.

    이것도 또 bcket list인가 우려하며 빠게츠를 비웁

    니다.